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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걸은 길, ‘농민을 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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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처럼 걸은 길, ‘농민을 위한 삶’

김천국 농군마을 대표

 


장남에, 장손인데다, 종손이다. 한국에서 이런 ‘타이틀’이 가지는 무게감은 잘 알 것이다. 장남 하나도 버거운데, 엎친데 덮친격 아닌가. 김천국 농군마을 대표(사진 오른쪽)가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한꺼번에 쏟아진 이런 타이틀. 그 누가 무겁지 않겠는가. 태어날 땐 이를 몰랐다 해도.


그런데 또 하나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는 가나안농군학교를 설립한 고 김용기 장로, 아버지는 그 뒤를 이은 현 가나안농군학교 김종일 이사장(사진 왼쪽). ‘농민을 위한 삶’을 선택했고, 그렇게 살아온 할아버지와 아버지. 더구나 가나안농군학교는 일제시대 독립운동과 함께 농촌계몽운동을 펼쳤고, 이후 농촌부흥을 이끌어 온 사회적 자산이다. 그걸 온몸으로 보고 듣고 체화하면서 자라야했던 소년. 아, 피할 도리가 없다.


역시나 스트레스가 있었다. 자신이 원했던 것도 아니고. 김 대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993년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의 생화학연구소에 취직도 했다. 자신은 ‘다른 길’을 걷게 될 것으로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알다시피, 생은 병적인 유머센스가 발휘되고, 운명은 역주행을 하기도 한다. 김 이사장이 유통사업의 시작을 위해 미국에 있는 아들을 호출했다.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렸을 때부터 농촌의 삶과 농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어쩌면 ‘농민을 위한 삶’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던 수순이었다. 2006년 6월 귀국길에 올랐다. 때마침, 한 대기업 계열사의 학교급식 파동이 있었고, 김 대표는 직감적으로 안전하고 믿을만한 먹을거리를 떠올렸다. 농민에게도, 소비자에게도 이로운 아이템이 되지 싶었다.


생협과 비즈니스 모델을 결합한 농군마을을 2007년 4월 만들었다. “같이 살아야하는데 유통업자를 욕하고 생산자를 못 믿고 서로 불신이 강한데다 생산자, 유통업자, 소비자 모두 불만이 있었다. 우리는 원가를 오픈해서 이렇게 운영한다고 투명하게 드러내고 마찰을 최소화 한다.” 농군마을의 운영과 관련한 원칙은 이렇게 정해졌다.


생산자(조합), 소비자, 유통사업자의 삼각편대로 움직이는 농군마을이 제공하는 농산물은 그래서 엄격하다. “다른 친환경유통업자들이 ‘왜 힘든 데 들어와서 사서 고생하냐’는 걱정도 해줬다. 나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필요하다. 사람 뿐 아니라, 지력도, 지구도 좋아질 수 있다.”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다.


그는 지속가능한 삶을 꿈꾸고 있다. 올해는 품목도 늘리고, 지난해 11월 오픈한 분당 친환경매장 외에도 추가로 3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다. 생산자들의 친환경농법 유도에도 나설 방침이다. 할 일이 많지만, 그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불량 먹을거리가 사람 잡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농군마을은 그런 우리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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