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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지구인/세상엔 이런 일이

지붕뚫고 하이킥 유감

<순풍산부인과>부터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나는 김병욱 피디의 팬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김병욱 피디가 만드는 시트콤의 팬이었다.

그가 공백을 깨고 <지붕뚫고 하이킥>을 시작했을 때, 이제는 그의 시트콤에서 졸업하고 싶었기에, 사실은 본방 사수할 자신이 없었기에, 본방을 보지 못했을 때의 우울함을 또 느끼긴 싫었기에 안 보는 쪽을 택하다 오랜 팬의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케이블에서 해주는 재방송 및 주말에 해주는 재방송을 사수하며 또다시 팬이 됐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안 보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보는 사람이라면 무릎을 칠 만큼 캐릭터 하나하나가 재미있고, 살아있으며, 무엇보다 내 주변의 누구(혹은 나)와 꼭 닮은 모습에 놀란다.
역시 김병욱이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난다.(이럴 땐 작가들이 참 억울할 거다. 내 경우 드라마는 작가와 피디가 함께 거론되거나 오히려 누구누구 작가의 작품, 이라는 인상이 강한데 시트콤은 연출자나 배우로 더 많이 인식한다. 논스톱의 김민식, 거침없이 하이킥의 김병욱, 제니퍼 애니스턴의 프렌즈, 라는 식으로)

어제, 날도 춥고 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 간만에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다가 진짜 울컥했다.
집에 상주하면서 집안일 다 하는 우리의 세경이 월급이 50만원이었단다. 주인 아줌마가 더 열심히 하라며, 일 빨리 배워서 조금 더 넣었다며 주는 돈이 60만원, 앞으로도 더 잘 하면 더 주겠다고 했지만... 그래봐야 얼마나 주냔 말이다.

지금은 누가 하라고 해도 안 하는, 어지간히 돈 많이 주지 않으면 하려고 들지도 않는 '입주 도우미'(비하하는 단어 아니다.)를 세경이가 하는데! 동생 하나 데리고 있다고 해서 걔가 밥을 먹으면 얼마나 더 먹는다고. 기껏해야 눈칫밥이지.

출근시간도 없고 퇴근시간도 없이 잠자리에 든 것 뻔히 알면서도 불러대고, 부르면 부르는대로 나가는 세경에게 60만원이란다. 60만원.
심지어 방도 제대로 안 주고 창고 같은 옷방 겸 빨래방에서 자게 하면서!

지금도 기억난다. 우리 고모네는 가족도 많고 할 일도 많아서 '언니야'를 들였는데 요즘말로 '가사 도우미'지 그 때는 '가정부'였다. 그 언니야는 어쩌다 놀러 가는 나를 귀여워해서(아마 고모집 언니들이 주는 눈치가 만만찮았으니 상대적으로 꼬박꼬박 언니, 하고 존댓말 쓰는 내가 예쁘긴 했을 거다. 고모집 언니들이야 좋을 땐 언니고, 나쁠 땐 야야 하며 신경질내기 일쑤였으니까... 어리니까 그랬겠지만) 머리도 묶어주고 콩주머니도 만들어주곤 했다. 때로는 설탕과자도 해주고, 아주 가끔은 100원도 주었다. 떡볶이 사먹으렴, 하면서.
그 언니야의 꿈은 얼른 얼마를 모아서 부모님께 드리고, 또 얼마를 모아서 시집 밑천을 마련하는 거였는데, 그 언니야가 목표를 이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언니야 시집은 우리 고모가 보냈다.(는게 고모의 표현이다. 아마 매달 주는 월급 외에 시집갈 때 혼수를 일부 장만해준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면 몇년이나 일했으니 퇴직금 쪼다 싶은데.. 그런 사람이 흔한 건 아니었는지 고모도 좀 자랑스러워하고, 언니야도 아주 고마워했다) 언니야는 결혼하고도 몇 년은 명절 때마다 와서 잠깐 인사하고, 또 그 많은 일을 척척하곤 했다. 나는 여기가 친정이나 마찬가지야, 하면서.

보통 친정이면 그런 일 안하잖아. 친정엔 쉬러 오는 거잖아,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이것도 옳은 생각은 아니지만 어린 마음엔 그랬다. 울 엄마도 외갓집 가선 별 일 안했거든) 나도 머리가 컸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나를 볼 때마다 언니는 "우리 ** 처녀가 다 됐네."하며 웃었다.
그게 참 짠했다, 어린 마음에 나는.

<지붕뚫고 하이킥>의 세경은 그 언니보다 더 어린 나이겠지.
그런데 60만원이라니, 60만원이라니.
그것도 올라서 60만원이라니.
에라이, 소리가 절로 났다.

극의 흐름상 캐릭터상 세경이 돈 많이 받을 수도 없지만,
적어도 최소임금은 받았으면 좋겠다.
흔히 '인정'의 가치, 혹은 가족같으니까로 대충 뭉개지말고,
줄 돈은 줘야지.
많이 주지는 못해도 최소 임금은 받아야지.
세경의 노동이 달랑 60만원어치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시간당 최소 임금만 받아도, 아니 크게 쳐서 일당 3만원이라 쳐도 90만원은 되는구만.
나중에 어쩌고 말고, 지금 주란 말이야.
선심 쓸 것 없고, 하는 것 만큼만. 아니 시세대로만.

시트콤은 시트콤일 뿐이지만,
그게 김병욱 피디의 시트콤이라서 더욱 아쉽다.
하나의 에피소드로 넘기기에는 팍팍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