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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사람과 사람을 잇는 착한여행

도시락 프로포즈와 도둑 결혼식

도시락 프로포즈와 도둑 결혼식

김 동 훈

조계종사회복지재단 기획홍보팀장

karunaa0506@gmail.com

 제 신부는 저보다 다섯 살이 연상입니다. 절에서 자원봉사를 하다가 만났고, 하라는 봉사는 안하고 연애만 하다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답니다. 막상 결혼을 결심하고나니 여러 가지가 걸렸습니다. 제 부모님이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인 장모 되실 분들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차와 비행기를 타고 부모님들을 만나기를 몇 회, 신부쪽 부모님은 우리의 굳은 의지를 못내 인정해주셨지만 제 부모님들의 반대는 여전히 단호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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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반대의 와중에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게 되었습니다. 겨울의 문턱이 왔을 때 쯤 그녀의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도식락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도시락 정도야 간단할 거라 생각했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세심하게 준비하는 도시락은 새벽 3시 반이 넘어서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갖은 재료를 준비해서 볶음밥을 만들고 그 위에 계란을 입히고 다시 김과 케찹과 치즈로 “나랑 결혼해줘”라는 글자를 넣었습니다. 방울토마토를 한 알 얹혀놓았고 그 속에는 결혼반지를 넣어두었습니다. 따뜻한 국물을 만들어 보온병에 담고, 후식으로 먹을 과일도 예쁘게 썰어서 따로 준비해두었습니다.

그 날 저녁에 아무것도 모르고 여느 때처럼 나를 만난 그녀는 한 짐 가득 들고 온 나의 물건들에 의아해했지만, 곧 저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를 불러주며 그녀에게 도시락을 건네주었습니다. 노래와 도시락과 반지와 “나랑 결혼해줘”라는 말에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금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가 느꼈던 감동을 여기서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겠죠^^. 그 날은 유난히도 추운 날이었지만 우리 둘에게만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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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결혼식을 했더랍니다. 더 이상 설득의 가능성이 없던 순간 사고를 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신부측 친인척들과 제 지인들만을 모셔놓고 남산야외웨딩홀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결혼식은 아니었고 피로연을 먼저 한 셈입니다. 우리의 속사정을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제 고향이 제주도라 그 다음 주에 제주도로 내려가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것이며, 하객들이 제주도까지 오시기 힘이 드시므로 일주일 전인 오늘에 미리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신랑쪽 친인척은 없으니 식장이 썰렁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오히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빈자리 없이 즐거운 행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결혼식이 아니어서 제가 직접 모든 행사를 기획하게 되었고 그 날 오셨던 분들에게는 기억에 남는 결혼축하행사가 되었다고 나중에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인도에서 같이 자원봉사를 하던 옛 동료들이 사회와 축가와 촬영을 맡아주었고, 청량사의 지현스님께서는 축시를 보내주셔서 처제 될 사람이 낭송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몽골 간단사의 푸레밧 스님께서는 음성파일로 주례사와 동시통역 내용을 녹음하셔서 보내주어 하객들과 같이 경청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이탈리아, 인도, 캄보디아, 라오스의 지인들이 각각 축전을 보내주시기도 했습니다. 신부와 저는 사회자와 함께 토크쇼 형식의 대담을 벌여서 신랑, 신부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과정을 통해 만났는지를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두 사람의 서원을 적은 공동발원문을 모두에게 낭독해드리기도 했습니다.

그 날은 모금운동도 같이 하였습니다. 청첩장에 저희 계좌번호를 미리 적어드려 당일 날 참석하지 못하시고 축의금만 보내주시면 행사장에서 직접 모금한 돈과 함께 버마 난민들을 돕는데 쓰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행사가 끝난 후 100만원이나 되는 돈이 모였고 그 돈은 APEBC라는 버마교육지원단체를 통해서 현지에 지원되었습니다. 버마의 수도인 양곤에서 차로 약 한시간 거리에 있는 딴 라인(Thalyin) 지역 바얏꾼(Phayahrkone)마을의 한 사찰내 에 있는 본터지띤( Bhone Taw Kyi Thin)이라는 초등학교가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300여명의 아이들이 있는 이 학교에서 하객들이 모아주신 성금은 대나무로 교실을 새로 짓고, 책 150권을 구입하고, 교사들의 월급을 몇 달간 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모금에 동참해주셨던 많은 하객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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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도둑결혼식 1년 후, 드디어 제 부모님들도 우리 부부를 인정해주시고 제주도에 내려가서 또다시 결혼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풍광이 아름다운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이번에는 많은 신랑측 친인척들을 모시고서 아주 익숙하게 결혼식을 다시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