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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지구인

돈 대신 정을 저축하는 '씨앗통장'이 있다?

맞춤형 단위사업 현황 시리즈―①


돈 대신 정을 저축하는 ‘씨앗통장’을 아시나요?


         <情>


600여 여성가장이 ‘물품과 재능’ 서로 교환하고 통장에 적립…

한국여성노동자회 ‘빈곤 여성가장 품앗이를 통한 자립강화사업’의 일환


[ 편집자 주: 맞춤형 단위사업은 사회적 서비스의 수요자인 취약계층이 필요로 하는 욕구를 명확히 파악하여 적합한 지원을 투입하는 사업입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2008년도에 보건복지가족부의 후원을 받아 전국 11개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뉴스레터 지면을 통해 사업의 필요성과 추진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


입출금 사항이 아니라 물건과 서비스의 거래내역이 나오는 통장이 있다. 저소득 여성가장들이 상호간에 밑반찬이나 생필품을 물물교환하고, 미용기술·영어교육 같은 개인능력을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한다. 거래내역은 고스란히 통장에 기록되고, 이렇게 모인 적립금으로 다른 사람의 물품이나 재능을 구매할 수 있다. 이 생소한 저축증서의 이름은 ‘씨앗통장.’


최근 한국여성노동자회(대표 최상림)는 ‘빈곤 여성가장 품앗이를 통한 자립강화사업’(이하 품앗이 사업)의 일환으로 소속 회원 600여명에게 이 같은 씨앗통장을 보급하고, 서로 간에 여유 있는 물품과 재능을 나누도록 지원하고 있다.


물품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품앗이 장터를 통해 교환하며, 재능은 돌봄서비스나 풍선아트처럼 각자 가지고 있는 기능을 회원들에게 제공한다. 이들이 교환한 가치는 ‘씨앗통장’에 모이고, 자신에게 필요한 다른 회원의 재능 및 물품을 구매하는 데 사용한다.


[[ 부천여성노동자회가 진행하는 11월 품앗이 장터에서 회원들이 풍선아트 기술을 배우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추진하는 품앗이 사업의 목표는 여성가장들 간에 물품과 재능을 서로 나누는 과정에서 생활비 절감과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회원간에 정을 나누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다”며 기존의 단순 자원봉사 혹은 재활용 바자회와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지난 11월21일(금) 품앗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9개 한국여성노동자회 지부 중 부천여성노동자회를 찾았다. 아래는 이 지역 사업을 총괄하는 나순희 팀장과의 일문일답.


“지역 주부와 여성가장 문의 늘어나”


질 문 : 현재 부천 지역의 회원은 어느 정도인가?


나팀장 : 지난 6월에 출범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금은 114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대부분 여성가장이나 저소득층 여성들이다. 최근엔 입소문이 퍼지면서 부천지역에 살고 있는 주부 및 여성가장들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질 문 : 어떤 물품·재능들이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나팀장 : 물품의 경우 주부·여성의 참여가 많아서인지 밑반찬과 같은 식료품과 가방, 옷 등 생필품이 많이 교환된다. 재능의 교환은 영어강좌, 미용기술, 풍선아트 등의 교육·돌봄 서비스 등이 다수이다. 보통 때는 돈으로 구매해야 하는 물건과 서비스이지만, 우리 회원들은 품앗이 사업을 통해 본인의 노동 혹은 여유 있는 물품과 바꾸는 것이다. 관련 정보는 인터넷카페에서 나누고 있으며, 전국 통합 전산망으로 확대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질 문 : 이른 감이 있지만, 경제적 효과는 어느 정도라고 생각되나?


나팀장 : 이 사업의 목표는 소비 절감뿐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적 효과만으로 사업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3개월이 지난 상황에서도 품앗이로 아끼는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시장에서 구매하려면 밑반찬 값, 머리 손질 비용, 영어교육비만 해도 얼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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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에 열린 품앗이 장터에서 부천여성노동자회 회원들이 대안경제에 관한 교육을 진행 중이다. ]]


“경제적 빈틈 메우고 지역공동체 형성할 것”


질 문 : 자본주의 사회에서 품앗이가 주류 경제활동으로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사업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나팀장 : 품앗이 사업으로 모든 경제활동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반 경제에서 놓치거나 소외되는 빈틈이 저소득 여성가장에게는 너무도 크고 많다. 이 사업을 통해 빈틈의 일부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더 큰 목표는 지역 내에서의 정서적 지지를 포함해 상부상조하는 지역공동체와 네트워크 형성이다. 지금은 여성노동자회 회원을 중심으로 하지만 앞으로는 다른 주민들에게로 회원을 확대할 계획이다.


나순희 팀장은 한 회원의 씨앗통장을 보여줬다. 젓갈, 반찬, 아이 돌보기… 거래내역이 작은 글씨로 빽빽이 적혀 있었다. 잔액이 꽤 되는 걸 보면 아직 얻은 것보다 베푼 것이 많은 듯하다. 언젠가는 다른 회원으로부터 꼭 필요한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