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호모루덴스/책이랑 놀기

이제는 옛날 일이 될 때도 되었건만



12월 19일부터 조금씩 읽고 있는 책이 있었어요. 어제야 다 읽었습니다.
책이 어려워서 이렇게 천천히 읽었던 건 아닙니다.
시간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기에도 좀 그래요. 바쁘긴 했지만, 조금씩 조금씩 읽어나가면 못 읽을 분량도 아니었거든요.

참, 읽기가 힘들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이소선 여사는 네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했던 노동자 전태일의 어머니입니다.
전태일의 죽음 이후, 이소선 열사는 전태일의 어머니가 아니라 이 땅 노동자의 어머니로 살아왔습니다.
그 구비구비 힘든 세월이, 이 책 안에 있습니다.

그렇게 힘든 세월이어서 읽기가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오래, 그렇게 힘든 세월을 지나왔는데,
이제는 그 땐 그랬지, 하고 적어도 지나간 이야기로 가끔은 웃어가며 이야기할 때도 되었는데
세기가 바뀌고도 한참이 지난
2008년 겨울에도
그 세월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꾸기는 어려워도 되돌리는 건 너무나 쉬운 모양입니다.
그것이 참 슬픕니다.

오늘, 우울한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 관계로 몇 번 통화를 한 적이 있고, 글도 받은 바 있는
소위 전도유망한 한 부장검사가 pd수첩 수사에 있어 검찰 수뇌부와 마찰 끝에 사의를 표했다는 거였어요.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30194.html 
 
이 추운 겨울날, MBC를 비롯한 언노련은 파업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무한도전은 덕분에 엉망인 채로 방송을 탔습니다.
콩크리트 바닥에서 구호를 외칠, 선배가 안쓰러워 문자를 보냈더니 고맙게도
"간만에 타오르고 있어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열심히 할께요!"라는 답신을 보내왔습니다.
차장 3년차 선배인데 말이지요. 지금 한창 드라마 구상에 빠져 있어야 할 제작 인력인데 말이지요.

이소선 여사의 말 마따나 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이 없어도 좋으니
지겹도록 진절머리나는 사람들 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가지로 슬픈 2008년 12월 막바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