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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벌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짜 자전거 주는 할아버지의 고민

어려운 아이들에게 공짜 자전거 주는 할아버지의 고민

고령자·노숙인 등이 버려진 자전거 수거해 불우이웃에게 기증하는 단체

…수익구조·정부지원·무상수거 안 되는 현실 이겨내려 노력


올해 66세의 홍경환 할아버지는 1년3개월째 자전거 고치는 일을 한다. 아파트 단지 등에서 못 쓰거나 버려진 자전거를 모아 수리한 다음, 저소득층 어린이공부방·독거노인·북한동포·동남아의 불우이웃에게 기증하는 단체에 몸을 담고 있다. 비영리 사단법인인 ‘(사)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자전거사랑)가 그곳이다.


“예전엔 자전거를 탈 줄만 알고, 고치는 법은 몰랐지. 쓸모없는 자전거를 조립해 어려운 아이들에게 준다는 생각을 하면 성취감이 생겨요. 추워지기 전까지는 내가 수리한 자전거를 직접 타고 출퇴근을 했어. 원래 무릎이 많이 아팠는데 하루에 한 시간씩 자전거로 왕복하다 보니 통증이 사라졌어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 홍경환 할아버지가 자신이 수리한 자전거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어려운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보낸다는 생각에 꼼꼼히 작업하려 한다”고 한다. ]]


저소득층 자녀 돕는다는 생각에 꼼꼼히 작업


할아버지는 원단 제조업을 하다가 2006년 사고로 골절상을 입으면서 사업을 접었다. “상처를 치료하며 6개월 동안 놀다가 너무 답답해서 인터넷을 뒤졌다”며 “힘들지만 노인도 할 수 있고, 잔소리가 없어 마음이 편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업할 때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밤늦게까지 죽어라 일했어요. 힘들지만 즐거웠지. 다리가 나은 뒤엔 난생 처음 낚시를 배워서 6개월 동안 물고기만 잡으러 다녔지. 그런데 일을 하지 않으니까 그것도 지겹더라고.”

자녀들이 “이제 그만 쉬시라”고 권하지만, 할아버지는 “놀면 더 힘들다”며 고집을 부리신단다. 연세가 많이 들었지만 모르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 좋고,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자전거를 보낸다는 생각에 꼼꼼하게 작업하려 노력하신다고 한다.


(사)자전거사랑이 문을 연 주요 취지도 “경제적 풍요 속에서 방치되어 폐기되는 자전거를 수거·수리해 도움이 필요한 공부방 및 저소득층 가구 자녀, 고아원, 북한·해외동포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현재 이 단체에서 일하는 실무직원의 숫자는 5명. 대부분은 할아버지 같은 고령자이고, 재활과정으로 일을 배우는 노숙인도 있다. 모두 자전거 수리와는 거리가 먼 이력의 소유자들이다. 다음은 홍경환 할아버지의 말씀.


“작년 9월에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아무 기술이 없어서 자전거 닦는 일만 했어요. 일주일 뒤부터 해체, 조립하는 일을 배웠는데, 가르치는 사람들이 귀찮을 정도로 질문을 해댔지. 여기서 일한 지 1년이 넘었지만 자전거는 종류가 많으니까 계속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 작업장 내에 수거한 자전거들이 쌓여 있다. 경기 고양에 있는 수도권철도차량관리단 내 창고와 마당 약 300여평을 빌렸다. ]]


수익구조 만들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할 것


‘(사)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가 수거한 자전거는 2008년 4월말 현재 약 7000대. 기증한 자전거는 지난 6월말 현재 약 2560대로 지역아동센터, 어린이 공부방 등에 전달됐다. 올해는 북한 개성공단(30대), 필리핀(300대)에도 이 단체가 수리한 자전거를 보냈다.


자전거 수거는 아파트 부녀회 등을 통해 이뤄진다. 상태가 좋은 자전거는 한두 시간이면 수리가 끝나지만, 어려울 때는 1인당 하루에 두 대밖에 작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해도 할아버지가 수선한 자전거는 수백 대가 넘는 셈이다.


최근 날씨가 추워지고 경기불황까지 겹치면서 (사)자전거사랑은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아파트 관리소 측이 방치된 자전거를 무상으로 주기 꺼린다는 것. 원자재 값이 올라가면서 고철 값이라도 받으려는 곳이 늘어나고 있단다.


수익구조 역시 문제다. 한때 사회적 일자리 창출사업의 일환으로 고령자와 노숙인을 취업시키면서 정부 보조금을 받았지만, 현재는 지원이 끊긴 상태다. 자전거 유상 판매, 이동수리소 운영, 교육사업 등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재정상태는 빠듯하다.


이 단체의 실무 운영진인 김용석 국장은 “어려운 형편이지만 자전거 재활용사업 외에도 부가서비스 영역을 개발해 수익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업체 구입-국내 기증사업’으로 연결되는 기업공헌활동을 전개하고 △ 정부의 생산성본부와 연계한 공무원 자전거 조립 교육사업을 통해 펼칠 예정이다.


이중 공무원 자전거조립사업은 지역 내 저소득층 자녀를 대상으로 지자체 공무원들이 자전거를 조립해 기증하는 사업으로, (사)자전거사랑은 공무원들에게 조립방법과 자전거에 대한 이해 등을 교육한다. 자체적으로도 아파트단지·관공서 등을 찾아가 유상으로 자전거를 고쳐주는 ‘이동 자전거 수리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또 재활용 자전거 생산과 이동수리사업으로 배출된 기술인력에 대해서는 ‘사회연대은행’ 등과 함께 소자본 창업 기회를 알선할 생각이다.


[[ (사)‘신명나는 한반도 자전거에 사랑을 싣고’의 실무 운영진인 김용석 국장(오른쪽)이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상임이사 김홍일 신부와 얘기하고 있다. ]]


“요즘 사정이 힘든 것 같아 걱정”


홍경환 할아버지는 “요즘 (실무 운영진이) 힘든가 보다”라며 “작년에는 이맘때쯤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왔는데…”하면서 말을 흐렸다. 12명에 이르던 직원 수는 절반 이하로 줄었고, 기증사업도 활발하지 않은 상태다.


할아버지는 다른 상처도 받았다. 올해 한 자전거 기증행사에 참석했다가, 옆 사람이 “기증하는 자전거가 모두 헌 것이라 받기 싫다”고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 할아버지는 “비싼 자전거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기분이 언짢았다”고 말했다.


“공짜로 주는 자전거니까 좋은 제품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 비록 중고자전거이지만 사고 위험이나 안전 우려가 없도록 꼼꼼하게 만들어요. 절대 잘못 수리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작지만 힘 있는 음성으로 말을 마친 할아버지는 수리가 끝난 자전거를 묵묵히 기름걸레로 닦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할아버지의 자전거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듯.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