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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신상/요리조리 맛있는삶

맛과 건강,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북대 햄으로 김밥을 만들어 보다!

                                (전북대 김밥햄에 놀란 눈먼아이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입이 까다롭다는 얘기는 꽤 들었다. 안 먹는 음식도 많고 맛이 이러니저러니 하다가 밥상머리에서 엄마한테 꿀밤 꽤나 맞았다. 그런 내가 아무리 맛없어도 먹는 음식이 있다면 그건 김밥과 떡볶이와 잡채다. 입 까다롭다더니 참 저렴하네, 하겠지만 그야말로 그만큼 좋아해서 먹는다는 거고, 사실 취향은 그만큼 까다롭다.


오늘은 김밥 이야기니, 김밥에 한정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김밥은 이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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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참기름과 소금으로 맞춤하게 간하고, 김밥 속으로는 오이, 맛살, 단무지, 어묵, 달걀, 김치가 들어가는 게 좋다. 오이는 소금에 절여 물기를 쫙 빼고, 단무지는 특유의 단맛이 없어야 한다. 어묵은 좀 도톰한 걸로 간장에 살짝 볶아 짭조름하고 졸깃한 식감이 있어야 하고, 달걀은 부드럽고 도톰해야 한다. 김치는 양념을 한 번 씻어 꼭 짠 후 프라이팬에 살짝 볶아 물기를 날린다. 김치는 반드시 잘 익은 신김치여야 한다.

마요네즈로 간한 참치나 쇠고기볶음 등 고급 김밥속으로 치는 재료를 선호하지 않는데, 그중에서도 절대 안 넣는 건 햄이다.


훈제 육류를 다 좋아하는 나는 반찬이나 샌드위치 속으로는 햄을 잘 먹는데 김밥에 넣는 건 싫다. 햄 특유의 냄새가 밥에 배는데다 햄의 강한 냄새가 다른 재료와의 조화를 해치는 것같고, 뭣보다 식은 김밥 속의 식은 햄은 따뜻할 때 먹으면 느끼지 못하는 약간 아릿하고, 약간 비릿하고… 그러니까 뭐랄까, 한마디로 조미료 및 방부제 맛이 너무나 잘 드러난 달까.(아, 이건 전적으로 나의 생각일 뿐)


천 원짜리 김밥이 넘쳐나면서 김에 저급한 식용유를 가득 발라 느끼한 것도 참고, 단무지의 달디 단 맛도 참겠는데, 싸구려 햄의 무언지 모를 잡육 냄새와 맛은 못 견뎌서 사먹을 땐 꼭 ‘햄’을 빼주세요, 라고 한다.


그런 내가 햄을 넣은 김밥을 만들게 생겼다. 전북대햄 입점을 검토하면서 맛은 어떤지 식감은 어떤지 평가하기로 했는데 하필이면 내게 떨어진 것이 김밥용 햄이기 때문이다. 김밥용 햄은 김밥으로 만들어봐야 가장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법. 나는 두 눈 질끈 감고 삽질하는 정신으로 김밥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안 먹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햄 들어간 김밥은 용납이 안 된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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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햄에서 만드는 김밥용 햄의 때깔은 한마디로 ‘안습’이다. 햄이라고 하면 진홍색의 선명한 색깔을 자랑해야 하는데, 이건 뭐 스모크햄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석쇠에 구운 듯한 흔적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속이 허옇다. 아니, 허옇다기보다 뭐랄까 맛없는 색이다. 이유는 있다. 발색제를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색제를 넣지 않은 햄은 진홍색의 선명한,
우리가 흔히 햄 색깔이라고 알고 있는 그 색이 안 난다.


적당한 두께로 잘라 프라이팬에 구웠다. 보통 햄을 구우면 기름이 흘러나와 프라이팬이 기름이 흥건한데, 이건 뭐, 기름기 하나 없다. 혹여 눌러 붙을까 봐 평소보다 더 자주 뒤집어주었다.


여기서 잠깐 옆길.

김밥속에 들어가는 재료 중에는 몸에 좋지 않은 것이 꽤 있다. 하다못해 천연 성분인 치자 물을 들였다는 노란 단무지에도 합성보존료와 방부제, 맛을 내기 위한 조미료 성분이 꽤 들어있다. 어묵은 그야말로 첨가물 덩어리이고, 좀 고급하다는 맛살도 예외는 아니다. 발색제까지 들어간 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안 먹는 게 제일 좋다지만,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조금 더 신경 써도 괜찮다. 단무지는 물을 여러 번 갈아가며 담가두었다가 식초 등으로 다시 간하면 좀 낫고, 어묵은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친 후 헹구면 방부제 및 보존료 성분이 꽤 빠져나간다고 한다. 맛살은 잘못하면 흐물흐물해지니까 패스.

(어이쿠, 저러니 차라리 김밥 한 줄 사먹고 치운다,는 소리가 드린다. 그렇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평소엔 나도 길거리김밥 잘 사먹는다. 하지만 집에서 만든다면, 특히 아이에게 주는 거라면 얘기가 다르다. 나야 이미 다자란 어른이지만, 어른이 주는 걸 먹을 수밖에 없는 아직은 짐승에 가까운 조카에게 주는 거라면... 난 웬만하면 저렇게 해주겠다. 단무지야 잘라서 좀 일찍 물에 담가두고 생각날 때마다 물만 갈아주면 되고, 어묵 데치는 건 정말 금방이니까 짐작하는 것보다 수고롭진 않다.)


그렇게 김밥을 만들어 회사로 들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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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반응은 꽤 좋다.


자꾸 나의 솜씨를 치켜세우기에 오늘의 포인트는 ‘햄’이라고 했더니 저마다 햄만 쏙쏙 빼먹어도 보고, 햄 든 김밥도 먹으며 만족스러워한다.


느끼하지 않고 식감도 쫄깃하다나.


그제서야 비로소 나도 한 입 먹는다.(햄 들어간 김밥, 진짜 싫어한다니까. Z)
그런데, 이 김밥 먹을 만하다. 꽤 맛있다. 내가 싫어한, 약간 아릿하고, 약간 비릿하고, 느끼한 잡육의 맛이 전혀 없고 산뜻하다. 재료와의 조화도 좋다. 식어도 맛있는 햄이라, 이 정도면 상당히 까다로운 나도 김밥속으로 넣을 수 있지.


국내산 무항생제 인증 돼지고기에 전분을 넣지 않아 식감이 살아있는데다 발색제, 합성보존료, MSG도 넣지 않아 건강상으로도 좋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는!(이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기특한 햄.


이제 조카에게 김밥을 해줄 땐 이 햄을 넣어줘야지.(조카들은 햄을 안 넣는 고모의 김밥을 별로 안 좋아한다. -_-a)


*분량 체크 및 남은 햄 활용법

김밥용 햄 하나로 굵게 썰면 10개, 가늘게 썰면 14개가 나온다. 보존료를 넣지 않아 개봉한 햄은 냉장실에 두어도 일주일 정도면 상한다.(나의 경험. 곰팡이 피더라.) 그러니 남은 햄은 구워서 빠른 시일 안에 먹는 게 좋다. 기름 살짝 두르고 프라이팬에 지져도 괜찮고, 좀 더 가늘게 썰어 감자와 함께 볶아도 잘 어울린다. 아니면 더 가늘게 다지듯 썰어 삶은 계란과 양파 등과 함께 버무려 샌드위치 속으로 활용해도 좋고.


시간이 없어 도저히 금방은 못 먹겠다면, 지퍼백 등에 갈무리하여 냉동실에 넣어두어야 한다.
(물론 냉동한 햄, 해동하면 맛은 확실히 떨어진다. 당연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