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향기
구절초처럼 수수하고 향기로운 사람들
지난해 10월, 꿈의향기 대표 황순애 선생님의 다정한 요청에 응하지 못하고, 6개월을 훌쩍 넘긴 올해 4월에야 정읍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마침 오늘이 구절초를 심는 날이래요. 정읍시 산내면에 위치한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의 무농약 구절초는 베개에 사용하고, 구절초차 및 산국 생산을 위한 구절초는 따로 재배한대요. 밭으로 갔더니 정읍지역자활센터에서 일하는 아주머니 열 분 정도가 구절초 한 포기 한 포기를 정성스럽게 손으로 심고 계시더군요.
“아주머니.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렇게 일일이 심으시네요. 힘들지 않으세요?”
“아녜요. 몸 움직일 수 있고, 일할 수 있으니 좋지요.”
정말 그런지 작업하는 내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구절초 심는 것도 노하우가 필요한데, 이 분들은 벌써 몇 년째 구절초를 심는 거라 작업 속도가 빠릅닙니다.
꿈의향기가 차 생산을 위해 올해 빌린 밭은 천 여 평. 지난해까지는 다른 곳에서 재배했는데 다년초인 구절초는 3~4년 정도면 뿌리가 썩어 수확이 잘 되지 않고 지력도 떨어지기에 올해부턴 이곳에서 구절초 및 산국을 재배한대요. 밭까지 한참을 올라갔답니다. 정말 공기가 다르구나 할 정도로 청정 지역이었어요.
꿈의향기 황순애 대표는 빠른 손놀림으로 구절초를 심으면서 말을 이어가셨어요. 올해까지는 이렇게 정읍지역자활센터에서 구절초 심기 등을 지원하지만 내년이나 후년쯤 지역자활센터에서 완전히 독립하면 구절초 밭 가꾸는데 필요한 인력의 인건비도 만만치 않을 거라고 하시네요.
그렇게 구절초를 심은 후 황순애 대표는 정읍의 구절재를 넘어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으로 우리를 안내했어요. 산내면에 위치한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에서 자란 구절초를 정읍지역자활센터에서 수매해 꿈의향기 베갯속 재료로 쓰는 거지요. 가을이면 공원 전체가 구절초꽃으로 덮이는데 얼마나 장관인지 매년 10월, 구절초축제가 열릴 정도로 정읍의 명물이랍니다. 구절재 인근에 구절초를 심어 관광자원 및 지역특산물 생산에 활용하자는 제안을 맨 처음 한 것도, 구절초를 심은 것도 정읍지역자활센터였다고 하네요. 정읍지역자활센터가 아니었다면 정읍의 구절초축제도 꿈의향기도 꿈의향기 구절초 베개도 없었을지 몰라요.
옥정호 테마공원은 아주 높은 곳에 있더군요. 그곳에서 햇빛은 따뜻한데 공기는 차갑고 신선하며 바람은 시원한, 묘한 경험을 했어요. 알고 보니 구절초가 재배되는 이 지역 전체가 지역 조례로 ‘청정지역’으로 묶여있대요. 그래서 농약을 치고 싶어도 칠 수가 없다고 하고, 칠 필요도 없는 거죠. 지대가 높아 딴 농지의 농약이 바람을 타고 올 가능성도 매우 낮아 교차오염의 위험도 낮다더군요.
드디어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꿈의향기 구절초 베개와 침구를 만드는 분들을 뵈었어요! 황순애 대표를 제외하곤 처음 뵈었어요. 물론 전화통화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들었지만요. 모두 열심히 미싱을 돌리며 일하고 계시더라고요. 사진기를 갖다대니 “어머, 어머, 뭘 나를 찍어요.” 하며 부끄러워하셨어요.
꿈의향기에 합류한 지 6개월쯤 되었다는 장영주 씨. 처녀 적에 양재를 배웠지만 죽 전업주부로 있었대요. 장영주 씨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많이 불편합니다. 그래도 꿈의향기 식구들이 내 몸에 맞게 내가 잘 쓸 수 있게 미싱도 뚝딱뚝딱 고쳐주어 크게 힘 안 들이고 일하고 있다고, 시간도 잘 가고 더 행복해졌다며 웃으시네요. 미소가 참 예쁜 분이셨어요.
일하는 내내 분위기를 주도하는 분은 전영숙 씨. 꿈의향기를 만들 때부터 함께 한 창업 멤버로 꿈의향기
에선 제일 막내지만 ‘목소리도 제일 크고’ ‘일도 제일 잘 하는 분’이랍니다. 전시회다 뭐다 해서 바쁜 황순애 대표께 “나만 일이 죽어요.(나만 일이 많다는 뜻의 정읍사투리). 언니는 만날 밖으로 나돌고.”하는 귀여운 투정도 하신대요.
꿈의향기 공동대표이기도 한 김일수 씨는 현장감독 겸 구절초 생산 책임자이기도 하세요. 늘 밖에서 일해서인지 얼굴은 까맣게 탔지만 부드러운 웃음까지 감출 순 없더군요. 귀걸이도 하고, 모자도 쓰는 등 꿈의향기 최고의 멋쟁이라고 하네요. 요즘은 미싱 다루는 법까지 배워 현장에 일이 없을 땐 공장 일도 함께 하신대요.
“IMF때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 고향인 정읍으로 돌아왔어요. 어렵게 살았죠. 정읍지역자활센터에서도 오래 일했고요. 뭐 큰 꿈 있나요. 자식들도 키워야 하고, 내 나이도 있으니 그저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일한 만큼 돈 좀 벌었으면 좋겠어요.”
김일수 씨의 솔직한 말이 전 오히려 감동적이었답니다.
그리고 황순애 대표.
아직도 소녀 기질을 다분히 갖고 계시는 황순애 대표는 올 2월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 3월부턴 대학에 다니고 계셔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고,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인데 힘든 줄 모르고 재밌기만 하시다네요.
“난 항상 그런 말을 해요.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면 행복해져요. 안 행복할 일이 뭐가 있어요. 아이들 착하고 내 몸 움직여 일할 수 있잖아요.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면 정말로 죽을 일만 남지요.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좋은 날이 올 거예요. 지금도 꿈의향기 베개며 이불이며 좋다고 계속 구매하는 고객들이 있으니까 힘이 나요. 정성껏 만든 제품이 사랑받는 것보다 더 기쁜 건 없잖아요.”
꿈의향기가 잘 되어서 돈을 많이 벌면 간병센터를 만들어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봉사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하시네요.
마침 구절초 베개를 만드는 참이어서 베갯속에 들어가는 재료들도 볼 수 있었답니다.
들어가는 한약재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데 얼마나 손놀림이 빠르신지 초보 ‘찍사’가 다 포착하지 못하고, 가장 많이 들어가는 두 종류만 찍었어요.
바짝 마른 구절초대와 구절초꽃, 각종 한약재에서 풍기는 향기, 그야말로 꿈의향기더군요.
지난 가을 수확해 정성스럽게 한 송이 한 송이 손질한 구절초차와 산국도 얼마나 예쁘던지요.
아, 그 향기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생각이 나요.
손놀림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일하던 분들이 구절초차를 마시며 잠깐 휴식을 취하셨어요.
도란도란 얘기하는 모습이 오래된 친구 같더군요.
실제로도 언니, 영숙아, 일수 씨 등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어요.
뭐랄까 그야말로 공동체 같은 분위기. 향기로운 구절초차가 마른 입을 적시고, 마음을 적셨습니다.
오전 10시 20분에 정읍에 도착했는데, 벌써 오후를 훌쩍 넘어 저녁으로 넘어가고 있어요. 아쉽지만 이제는 헤어질 시간. 우리는 오래 오래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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