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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신상/요리조리 맛있는삶

매실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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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매실이라는 것도, 매실이 있다는 것도 몰랐을 때의 일입니다.
그 날, 배가 너무너무 아파서 엉엉 울면서 엄마, 배 아파, 했더니... 엄마가 잠깐 나가시더군요. 약 사러 가려나 보다 했어요. 그런데 잠시 뒤 돌아온 엄마가 내민 건, 사이다잔에 반쯤 찬 정체모를 액체.
"이거 마시면 금방 낫는다."
무슨 약이 이러냐면서도 내가 죽겠는데, 어째요. 마셨습니다.
마시고나니 머리가 어질어질 정신이 뱅글뱅글... 배 아픈 줄 모르겠더군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기절하듯 잠들다 일어났더니 벌써 한 밤.
거짓말처럼 배는 안 아픈데, 도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요.
엄마는 방글방글 웃으며
"너 술 먹었다. 그거 매실주다. 배 아플 땐 매실이 최고거든."
그렇게 저는 음주가능 연령에서 한참 못 미칠 때 엄마때문에 술을 마신 것이었습니다.
(아마 1층 아주머니께 얻어온 거겠죠. 엄마는 술이라면 다 별로라고 생각하셔서 과일주 같은 거 안 만드시거든요. 그거 얻어올 시간에 약 사오겠구만)
그 때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배 아플 땐 매실이라는 등식이 제겐 있었어요.

요 몇년간 엄마는 계속 매실액을 담그셔요. 굳이 비표준어를 쓰자면 '매실엑기스'쯤 되려나요.
매실을 설탕에 재고 계속 두면 매실에서 매실즙이 빠져나오고 설탕은 녹고, 뭐 그렇게 생긴 액체만 잘 걸러 생수병에 담아 보관하는 거죠.
그 매실액은 동생네 집에선 매실주스로, 엄마는 요리 및 반찬에 조청이나 설탕 대신 사용하고,
저는 주로 소주와 차가운 물을 섞어^^ 간단한 매실칵테일로 만들어 먹습니다. 술 마신 다음날 간단히 속을 풀기에도 좋고요.
(엄마가 그 매실액으로 매실칵테일을 만들어 먹는다는 걸 알면, 정말로 어이없어 하시겠지만, 원죄는 엄마에게 있는 겁니다.)

저는 매실장아찌도 참 좋아하고, 일본식 매실장아찌 우매보시도 참 좋아하는데,
어찌된 셈인지 울 엄마는 도통 '매실엑기스'만 끊임없이 만드실 뿐, 장아찌는 만들 생각을 안 하셔요.
귀찮아서라기보다는 당신이 별로 안 좋아하시니까.

몇 번 조르다가 이번엔 제가 직접 매실장아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마침 생으로도 먹어도 안심일 만큼 좋은 유기농 토종매실도 나와 있겠다 친절하게 매실장아찌며 매실액 만드는 법도 가르쳐주겠다  못할 거 뭐 있나요. 별로 어렵지도 않을 것 같은데.

올 여름엔 매실장아찌, 잘 만들어 엄마에게 한 통 보내드려야겠어요.
몇 년간 매실액을 받았으니 그 정도 해드리는 건 별 것 아닌데다..
뭣보다 울 아빠도 매실장아찌 좋아하시거든요.
(만약 실패해도.... 리스크 분산 차원에서.. 함께 나누자는 거지요. ㅎㅎ)

식구가 많거나 한 번 할 때 많이 하자는 분은 유기농 토종매실 10킬로그램
저처럼 단촐한 분은 유기농 토종매실 5킬로그램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과육까지 먹든, 액만 먹든 그 영양덩어리 그대로 먹는 거니, 유기농이면 안심이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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