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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사람들 이야기

아들처럼 어머니처럼 - 이상운 매니저와 할머니 파티시에들

10월 20일, 그러니까 화요일 저녁에 경주시니어클럽의 이상운 선생님이 서울에 오셨어요.
11월 11일 서라벌찰보리빵 리뉴얼을 앞두고 케이스 샘플을 확인하러 오는 김에 저를 만나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아니, 서울 출장인데 주문도 평소처럼 다 소화하시고..."
"그러느라 땀 좀 뺐습니다. 온라인 주문은 3시까지 모두 소화하고, 다음날 아침에 구울 빵 재료 비율은 모두 제가 다 맞춰놓고 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이로운몰에 들어오기도 전, 2008년 5월에 가서 뵌 후 처음이네요. 전화통화나 메신저 회의는 그동안 수도 없이 했습니다만.

이상운 선생님이 '어디가서 꿉죠' 라고 하셔서 삼겹살을 앞에 두고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팥을 직접 수매하셨다면서요."
"아이고, 말 마세요. 그것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경주 인근 어르신들께 우리가 다 수매할테니 농사 좀 지어달라고 해도 팥은 돈이 안 된다며 손사레치는 바람에 올해는 겨우 한마지기만 계약재배를 했어요."
"그럼 팥이 모자라겠네요."
"예. 그래서 할 수없이 경주 어르신들이 재배한 게 아닌 국산 팥을 구했습니다. 요즘 국산 팥도 잘 없어서 일년치 팥 장만하는데도 힘들었네요."
"무농약 인증은 없는거지요?"
(잠시 웃으시더니) "예. 없습니다. 팥이 돈이 안 되어서 비싼 돈 주고 농약까지 쳐가며 농사짓는 분은 거의 없을 걸요. 요즘은 워낙 중국산 팥이 싸니까요. 경주 인근 어르신도 투덜투덜거리셨어요. 차라리 깨를 심으면 깻잎도 팔고 수확하면 깨도 파는데 하시면서요."
"팥소까지 직접 만드시려면 품이 많이 들겠어요."
"그렇긴 한데, 그래도 직접 만들면 더 믿을 수 있잖아요. 맛도 조금씩 변화를 줄 수 있고. 몇 번 시험삼아 해봤는데요... 맛이 괜찮아요. 향도 확 살고 좋더라고요."

우리의 대화 주제는 늘 이렇게 '상품'에 대한 것이기 마련이지만, 흘러가다보면 일하는 사람의 애환이 나오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과 일하는 게 좀 힘들더라고요. 일단 어르신들이 체력이 매우 약하신 편이니까 조금만 바빠도 힘들어하세요. 어르신들끼리도 미묘한 알력이랄까 그런 게 있는데 중간에 제가 난처할 때도 있었고요. 왜 나는 일하는 시간을 많이 안 주고, 쟤는 많이 주느냐 하실 때도 있었어요. 지금은 체계가 잡혀서 그런 일은 없는데, 저도 처음에는 서툴다보니.....딱 인터넷 주문 확인은 물론 안 되고, 전화 주문받는 것도 힘들어하시거든요. 지금도 열 분 가까이 교대로 일하고 계시지만 전화 주문을 받을 수 있는 어르신은 두 분 밖에 안 되세요. 그렇다고 또 손님들이 불편하시면 안 되니까....
그래도 지금은 정말로 아들같고 어머니같고 그래요. 어르신들은 당신 아들이나 며느리에 대해서 이해 안 되는 거나 섭섭한 거 이야기하고, 저는 저대로 결혼생활이나 처가나 본가의 사소한 문제에 대해 조언을 받기도 하거든요. 이제 제가 의지하는 부분도 참 많지요. 지금은 참 좋아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저녁 담당인 경주에서 온 할머니 파티시에분이었어요.
이상운 선생님께서 서울로 출발하기 전에 준비해두었던 찰보리빵이 얼마만큼 팔렸다, 3통 남았다, 뭐 이런 보고전화였어요.
"예. 보살님(아마 그 할머니는 절에 다니시나 봐요).. 정말 수고하셨네요. 어서 들어가서 쉬시고 내일 아침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르신들과 일하는 게 이제 너무 익숙하고 좋다는 이상운 선생님께서도 불만은 딱 한 가지 있더군요. 바로 회식.
"어르신들과 일하니까 회식 자체가 거의 없고, 어쩌다 회식을 해도 밥 먹고 헤어지는거잖아요. 그러니까 직장 동료들과 술 한 잔 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게 없지요. 그게 진짜 아쉬워요. 그래서 퇴근해서 술 한 잔씩 하는데... 그 바람에 술이 좀 늘었어요."

아, 그러고보니 소주 2병에 맥주 2병을 비웠군요.

아참, 오늘 별 이야기를 다합니다, 하면서도 간만에 만난 '젊은'(?) 사람이 반가웠는지 이상운 선생님은 이것저것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아, 진짜 별 얘기를 다해요, 하면서 프로포즈 성공담도 들려주셨어요.
마음에 두고 있는 분에게 그것도 대낮에
"나 오늘 너한테 사귀자고 해서 성공하면 친구한테 양주 얻어먹고 실패하면 친구한테 소주사기로 했다. 양주 먹을까 소주 먹을까 양주 먹을까 소주 먹을까"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는 아리따운 처녀에게
"나 양주 먹는다"
했다고 하네요.
그 아리따운 처녀는 지금 이상운 선생님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 멋져.

나도 언제 저 방법 써먹어야지.

결국 이야기는 '일'로 마무리됩니다.
"진짜 이해가 안 되요. 오픈마켓이나 다른 쇼핑몰에서 파는 찰보리빵 가격이요. 어떻게 그 가격에 팔 수가 있어요? 우리는 계란하고 우유로 반죽하는데 그쪽은 물로 반죽하고 향만 내나. 아, 진짜 모르겠어요."

맛을 보면 그 차이를 아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 찰보리빵 진짜 비싼 거 아니거든요. 인건비랑 가게세 빼고 전부 재료비로 다 넣거든요. 우리는 진짜 좋은 재료 쓰거든요, 하는데 정말 찰보리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시더라고요.

어제 경주에 잘 도착했는데 밀린 일 처리하느라 연락 못했다는 이상운 선생님의 메신저를 보고 잠시 웃었습니다.

그 밀린 일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서요.

아참, 찰보리빵은 11월 11일부터 어쩔 수 없이 가격을 인상합니다. 계란, 설탕, 우유 등 재료값이 그동안 장난 아니게 올랐잖아요. 경주지역의 다른 찰보리빵 가게는 벌써 가격을 인상했는데 여지껏 서라벌찰보리빵은 가격 그대로 버텼지요.
그런데 포장도 새롭게 바꾸고 계약재배한 국산 팥으로 팥소도 직접 만들어 기껏 가격을 올려도 진짜 남는 건 없을 듯해요.

그래도 이로운몰 회원들께는 감사의 마음을 남아 리뉴얼 기념 5% 할인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5% 할인된 가격에 맞춰 무료배송 금액도 내렸으니 이 참에 맛보세요! 더 맛있어졌습니다. :)

그래도 이상운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는 일반 업체가 아니니까 기본 운영만 되면, 나머지는 무조건 재료에 투자하는 게 맞습니다. 그래야 됩니다.

저는 찰보리빵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지금 서라벌찰보리빵이 너무 좋습니다.
아마 사람 때문일 겁니다.
열심히 마음을 다해 일하는 사람은 제 입맛까지 바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