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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게벌기/쿨하게 돈 버는 사람들

할머니, 국회의원실의 생명을 틔우다

할머니, 국회의원실의 생명을 틔우다

의원회관에서 화초 관리하는 정혜자 할머니의 ‘건강한 열정’…

“‘일하러 간다’면 친구들이 부러워해” 고령화 사회 속 사회적 일자리 확대 필요

지난 18일(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내의 어느 의원실. 60대 할머니 한 분이 의원실 내에 있는 50여개의 화분을 하나씩 손질하고 있다. 전정가위로 죽은 잎사귀를 일일이 잘라내고, 화초의 줄기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의원실에서 일하는 분들은 너무 바쁘니까 식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지. 실내에 싱싱하고 푸른 화초가 가득하면 머리가 맑아지고 아이디어도 잘 떠오르게 마련인데. 잘 관리한 화초는 가습기 역할을 하고, 곰팡이 걱정까지 없애줘요.”

(사)‘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이하 ‘여성 미래’)라는 사회적기업에서 원예관리사로 일하는 정혜자 할머니. 1주일에 1회 이상 정해진 국회 내 사무실의 화분을 돌보는 것은 기본이고, 각 의원실마다 팸플릿을 돌리며 원예관리 판촉활동(?)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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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자 할머니가 국회의원회관의 한 의원실 내에서 신중하게 화초를 손질하고 있다. “‘화초가 예쁘다’ ‘벌써 싹이 자랐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하다”고 한다. ]]

“나이 들면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소일거리 없이 지내는 노인들이 많은데, 나는 일하면서 돈까지 버니까 건강하게 사는 거지. 친구들이 놀자고 전화할 때 ‘일하러 가야 한다’고 대답하면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해요. 가족들은 돈보다 건강 때문에라도 내가 일하는 것을 좋아해요.”

일하며 보람과 건강까지 얻는 노후생활 필요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7월 현재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수는 500만 명으로 전체 인구 10명 중 1명꼴이다. 2018년부터는 노인 인구 비율이 14%를 넘는 ‘고령사회’를 맞고, 젊은이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전망이다. 정혜자 할머니처럼 ‘일하면서 보람과 건강까지 누리는’ 어르신들이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다.

‘여성 미래’는 3년 전부터 고령여성을 중심으로 ‘푸른 미래’라는 원예사업단을 운영 중이다. ‘푸른 미래’는 국회의원회관, 영등포구청, 한국노동연구원 등 20여개소의 실내화초 관리업무를 하고, 원예교실 같은 교육·취미활동도 벌인다.

대상은 50~60대의 중·고령 여성인데, 40대 아주머니나 70대 어르신은 물론이고 남성도 참여한다고 한다. 정혜자 할머니는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난 덕분인지, 70대 할머니도 젊은 사람보다 일을 잘한다”며 웃는다. 일에 대한 애정 또한 남다르다.

“내가 맡은 화초가 죽을까봐 긴장을 늦추지 않지. 분갈이한 화분이 잘 살까 걱정이 많고… 잘 자라면 기쁘고 행복해서 스트레스가 확 풀려요. 식물도 생물인데, 화초가 죽는 환경에서 사람이라고 건강할 수 있겠어요?”

‘여성 미래’의 원예관리사는 아마추어가 아니다. 전문교수가 원예, 옥상관리, 조경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3개월 동안 가르친다. 교육과정에서는 “청소하는 분이 싫어하니까, 화초를 다듬고 물을 준 뒤에는 정리를 철저히 하라”는 당부까지 한다.

한 달마다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지고, 업무에 관한 정보를 나누거나 겨울철 화초관리의 주의사항 등을 공부한다. 원예에 관한 디자인을 배우고, 관련 전시회에 견학도 다닌다.

“다른 의원실이 부러워하도록 만들 것”

할머니는 “의원실 직원들에게서 ‘화초가 예쁘다’ ‘벌써 싹이 자랐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하다”며 “다른 의원실 사람들이 부러워하도록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의원실로 배달되는 화분은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서 길어야 한 달밖에 살지 못하거든. 우리가 관리하는 화초는 계속 살아 있으니까, 보낸 분의 정성이 간직되는 것이죠. 그 분이 의원실을 방문할 때 ‘보내주신 화분이 이렇게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흐뭇하시겠어요.”

할머니의 바람은 정부 지원의 확대다. 일반인들에게 무료서비스를 제공한 결과 “정신·육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반응을 얻었지만 비용문제 때문에 정식계약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국민건강 증진을 위해 정부가 원예관리사업에 예산을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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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투자지원재단의 상임이사인 김홍일 신부가 할머니와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의원실에도 홍보해주시기로 약속^^ ]]

또 하나의 바람은 국회의원회관 내에서 화분관리를 맡기는 의원실이 20개 이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16대 국회에서는 다섯 개 의원실을 관리했는데, 17대 총선에서 의원들이 교체되는 바람에 지금은 그보다 숫자가 줄었다고 한다. 스스로 판촉활동에 열심인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한다.

마침 회관 로비에서 유명한 여성 국회의원이 지나갔다. 할머니가 익숙한 듯이 고개를 숙이니 그 의원도 웃는 낯으로 인사한다. “원래 아시는 분이야”고 할머니에게 여쭸더니 이런 답변이 돌아온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인데 인사하는 게 뭐가 잘못 됐어? 이렇게 얼굴을 익혀야 나중에 고객으로 모실 수 있지 않겠어요.”

할머니의 웃음에서 건강한 열정이 묻어난다. <끝>

2008년 11월18일(화)

사회투자지원재단

※(사)‘여성이 만드는 일과 미래’는 도시환경을 푸르게 가꾸는 그린 네트워크(Green-Network) 관련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연락처는 02-761-2748, 홈페이지는 http://www.womanfuture.or.kr/ 입니다.

※사회투자지원재단은 사회적 투자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 개발과 사회양극화 완화를 목표로 합니다. 민간단체로서 ▲사회적기업 네트워크 지원사업 ▲사회적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기업 지원을 위한 조사연구사업 ▲사회자본 인프라 형성을 위한 휴먼뱅크 구축사업 등을 진행 중입니다. 연락처는 02-322-7020, 인터넷 홈페이지는 http://www.ksif.kr/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