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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지구인/폰카·디카로 본 세상

유통기한 단상

마트나 수퍼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유통기한을 유심히 살핀다.
당연히, 유통기한이 넉넉한 물건을 고르기 위해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건일수록 먼저 팔리도록 손에 집히기 좋은 곳에, 앞줄에 두기 마련이라 일부러 손을 깊숙하게 넣어 물건을 빼고, 앞의 것보다 하루라도 넉넉한 유통기한인 걸 보면서, 역시 하고 뿌듯해하기도 한다.
머리 싸움에서 내가 이겼다,는 우월의식까지.

그런데 말이다.
오래 두고 먹을 것이 아니고 바로 지금 먹을 200ml짜리 우유 하나 사면서도 굳이 유통기한이 넉넉한 쪽을 고르는 것이 정말로 합리적인 소비일까.
최근 생산된 것일수록 더 신선할 것이라는 나름 근거 있는 판단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너도 나도 넉넉한 유통기한의 물건만 고르다보면, 아직 이틀이나 남은 우유는, 곧 하루 남은 우유가 될 것이고, 금방 당일만 유통가능한 우유가 될 것이고, 결국엔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가 되어 폐기처분될 거다.
이틀 전, 내가 골라 바로 마셨으면 버리지 않아도 되는 좋은 식품이었는데.

언젠가,
유럽 시민들은 오래 저장해두고 먹는 음식이 아니라면 유통기한이 임박한 걸 일부러 고르는 경우도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의미겠지.

더 좋은 건,
유통기한을 걱정하며 쌓아두지 않아도 될 만큼만 사는 거다.
대포장, 덕용포장, 나의 소비속도에 맞지 않게 많이 사지 않는 거다.
어쩌면 그것이 훨씬 더 합리적이고 내게 이로운 소비다.

밀크티를 만들겠다고 우유를 사서 딱 한 번 해 먹고 며칠 두었더니
어느새 유통기한이 하루가 지났다.
살짝 맛을 봤더니 괜찮기에 억지로 남은 700ml를 다 마시고 나니, 참 어리석다 싶다.
처음부터 욕심내지 않고, 필요할 때 다시 사서 나올 생각을 하고 200ml 우유를 샀으면 이러지 않아도 될 텐데.

어쩌면 냉장고가 사람을 욕심꾸러기로 만드는 게 아니라,
개당 단가, 그램당 단가로 표기되는 대형 포장의 제품을 사는 얄팍한 계산이 사람을 욕심꾸러기로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 눈먼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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