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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일삽우일삽

트렌치코트의 비밀

가을이다.
가을이다.
출근시간이 빠듯함에도 불구하고 고탄력 스타킹에 억지로 다리를 끼워넣고, 니트 블라우스의 리본도 나름 예쁘게 매고 화룡점정으로 트렌치코트를 입었다.
가을은 트렌치코트의 계절이니까.
지하철 안에서도 지하철에서 내려 회사로 걸어오는 동안에도 나는 괜히 가을 여인이 된 듯, 우아하지만 경쾌하게 또각또각 걸었다.
이거 왜 이래, 나 가을 여자야.
라는 분위기 팍팍 풍기며.
차림이 그래서 그런가, 경쾌하고 우아한 내 발걸음 때문인가,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주목하는 것 같다. 기분 나쁘지 않다.

청계천 다리를 건너는데, 왠 아주머니께서 내게 말을 건다.
"저기요, 아가씨."
길을 물으시려나. 아침부터 도를 믿으십니까,는 아닐 테고.
"네?"
"저기, 바바리에 이름표 붙었어요."
"네에~~~"
아주머니의 눈길이 머무른 그곳, 트렌치코트 끝자락에 참으로 크게도 내 이름 석자와 4월 1일이라는 날짜가 붙은 세탁소 이름표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이름표를 떼기에 바빴다.

가을이다.
가을이다.
트렌치코트의 계절, 가을이다.
세탁소에 맡긴 옷을 처음 입을 땐 이름표를 확인하자.
이름표를 붙이는 건 내 가슴에 족하고,
그것도 학생 때나 필요한 일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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